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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직 모닝비어를 누릴 수 있나요
    카테고리 없음 2024. 1. 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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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빡한 일정이 있는 경우가 아닌 경우로서, 흔히들 하는 동남아 리조트 여행을 가게 되면 분주하지 않은 일상과 여유로운 아침이 유난히 특징적이다. 나만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평소에는 유난히 분주한 일상과 정신없는 아침을 보낸다. 다소 강박적 성향이 있는 나는 매분 매초 쪼개어 뭔가를 그득그득 채워 넣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아 한다. 운전을 하면서 과학방송을 듣고 소설을 읽으면서 자전거(실내 운동용)를 탄다. 물론 이런 성향의 결과물로 동남아 리조트 여행을 가더라도 대충은 몇시에 일어나서 대충은 수영장에서 몇시까지 있고 대충은 언제쯤 어떤 메뉴를 먹는지 정해 놓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대충이기 때문에 듬성듬성 시간의 빈틈들을 누리게 된다.

    때는 2017년 가을이었던 것 같다. 계획하는 여행을 선호하던 나도 바쁜 일과와 추석 차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패키지 여행을 예약하여 보라카이로 가게 되었다. 시간은 쫀쫀하게 쓰지만 돈은 듬성듬성 쓰는 나는 현지 가이드가 제안한 모든 투어를 받아들였다. 이에 감사한 마음을 가진(감사한 마음으로 해주는 이벤트라고는 하였으나 비용에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강하게 믿고 있는) 가이드는 함께 투어를 하는 일행들에게 화이트비치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그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충분히 시원한 소주와 맥주를 무한리필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 예상대로 나는,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일행들은 물놀이와 음주(함께 하면 상당히 위험하지만 사실상 물놀이 멤버와 음주멤버는 나뉘어져 있어서 안전했음)를 하기 시작했고 음주 멤버들만 삼삼오오 모여 앉아 급격히 사회적 거리를 단축하는 술자리를 이어갔다. 주류멤버가 약 6(오가며 한잔씩 거드는 이들도 있었지만)인데 우리는 흔히 돼지코라고 하는 1.5리터 맥주 기준으로 약 27개를 소맥으로 말아 먹어 버렸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무한리필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 아침 예약되어 있는 투어일정을 위하여 일찍 애들과 이동하던 중에 전날 화이트비치의 멤버를 만나게 되었고, “형수님, 해장 하셔야죠. “라고 하시면서 시원한 맥주를 주셨다. 진하게 한잔 한 다음날 목이 몹시 타 있었던 아침 따스한 햇살아래 마시게 된 그 한잔은 그야 말로 꿀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인연이 되어 긴긴 만남을 이어가게 되었다. 우리 모임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라면 밤새 술 마시고 떠들었음에도 일어나자마자 냉장고를 열고 시원한 맥주를 꺼내 놓는 것이다.

    감기로 해롱거리는 요즘, 간만에 술과의 거리두기를 하나 싶었는데 그것도 오래 가지 못하고 반주로 홀짝홀짝 거들기만 하고 있다. 새해의 첫날 퇴근길에 어떤 메뉴를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문뜩 내가 만든 요리가 먹고 싶어 팔을 걷어 붙이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1년이라는 것을 하나의 단위로 마무리 짓고 시작하고 하다 보면 뭔가 새로운 시작에는 의미 있는 설정들을 하고 가야 같은 강박이 생기게 된다. 올해는 그냥 그렇게 시작해 봤다. 독감 때문에 생각의 여유가 전혀 없어져 닥치는 일을 해결하는 것에 만족을 하고 멍한 머리를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더니, 또한 여유라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역시나 독감 덕분에 연휴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 추리소설 한권을 집어 읽는 것이 나에게 충분한 만족을 있는 시간이 지경이 되어 버렸다. 출근 부담이 없는 내리는 함박눈이 이렇게 아름답고 은혜로울 수가 있을까.

    나는 분주한 것을 싫어한다. 한가한 것은 싫어한다. 적당히 가득가득 뭔가 질서 있게 나가는 것을 동경한다.

    내가 몹시 존경했던 교수님이 계셨다. 북경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중국에서 인도에 대한 조예가 가장 깊으셨던 분이셨다. 분은 2009 98 일기로 세상을 마감하셨다. 교수님은 7가지 언어에 정통하셨고 90세가 훌쩍 지난 나이에도 새로운 연구에 필요하신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시는 그런 분이셨다. 교수님의 90세의 5개년 계획, 95세의 5개년 계획 모두 몹시 유명한 일화다. 그는 새로운 연구가 굶주렸고 계획하고 이루어 나가셨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외양간에 갇혀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시대에 대한 통찰과 이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오히려 값진 글감으로 만들어 내셨던 분이다.

    나는 이런 삶을 동경한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무언가에 몰입하고 노력하고 이루어가는 그런 . “그런 나의 현재의 괴리라면 세상에 기여할 있는 어떤 주제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 싶다. 지금까지 라는 매개체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살아 왔다면 이제는 어떤 역할을 있는 지에 다가가기 위하여 삶을 전개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진정한 즐거움을 있는 삶을 찾아 나서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나이 아니던가.

    나는 운이 좋다. 부모님께 명석한 두뇌를 물려 받아 공부가 쉬웠고 이어서의 생계도 어렵지 않았다. 나는 분주하게 먹고 사는 일에 노력하지 않아도 만큼 그야 말로 살만 했다”. 그래서 건방지게 분주한 것을 싫어 한다는 같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운이 좋다. 적당한 주량과 흥을 갖고 태어나 노는 즐거움도 충분히 알고 관계를 가지기에 서슴없는 아이로 살아왔다. 나이가 한살씩 차오르면서 더더욱 최선을 하여 즐겁지 않은 순간이 없을 만큼 놀아야 겠노라고 이것 저것 찾아 나서고 있다. 여행도, 술도, 책도 나에게 그런 소중한 것들이다.

    연말 연시, 어쩌면 가장 생각이 많고 바빠야 하는 시간에 독감 덕분에 모든 것이 더디게 흘러 이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만들어 같다. 낮술 한잔 하기 부담스러운 컨디션을 가지고 있으나, 소소하게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따뜻한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나가 아닌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에 다가가게 있는 그런 별난 여유를 가져본다.

    얼마 전에 보라카이 패밀리들이 우리집에 모였다.

    우리는 웃음꽃을 피우며 밤을 새서, 그리고 아침에도 술잔을 기울이며 눈이 오는 연말을 함께 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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