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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다
    서울살이 2008. 12. 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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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잠자고,

    일곱시에 일어났는데,

    혹시 내가 너무 자서, 저녁 일곱시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밖은 캄캄했다.

    어쩌다가,

    겨울이 이렇게 와버린건지.

     

    할빈의 겨울은,

    4시반부터 어두워지고 여덟시가 거의 되야 밝아진다.

    엄청 긴 시간을 거기에서 그런 겨울에 익숙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어느덧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만큼,

    또 하나의 긴 시간이 흘러갔다.

    겨울은, 사람이 몸을 움츠리게 하는 만큼

    따스함을 몸 깊이 품고

    스스로 다시 음미하고 즐기게 하는 야릇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어제 중화tv에서 황제의 딸을 봤다.

    한창 히트할 때가 아마도 고등학교 때였을 것이다.

    방금 전의 일 같았는데,

    거기에 나오는 얼굴들을 보면서

    참 많은 시간이 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보다는

    여러가지 따뜻했던 과거의 느낌을 음미하면서,

    헐리웃 액션을 난발하는 귀여운 드라마를 즐겼다.

    지금 봐도, 너무 좋다.

     

    참 다행인 것이 한가지 있다.

    하늘이 무너질 것 처럼 슬펐던 것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귀엽게, 우습게, 여러가지로 모습을 바꿔 기억속에 자리잡는다.

    하지만,

    행복은,

    지나고 나서 돌이켜봐도

    다시 몰래 화사하게 웃어버릴 수 있는,

    그리고 시간이 가도 색바래지 않고,

    포근하게 품고 또 품어서 살맛이 나고 훈훈해진다.

     

    미친 애처럼,

    에이, 왜 그랬대,

    하면서 방긋방긋 웃다가 잠들 수 있는,

    나에게 이런 행복과 이런 행복한 기억을 가져다줬던 모든 사람에게 고마울 뿐이다.

     

    겨울은 여물어가고

    온도가 들쑹날쑹해도

    짙은 겨울냄새는 확실하다.

    새하얀 얘쁜 코트하나 꿈꾸면서,

    얘쁜 2008년을 마무리해주고,

    2009년을 맞아줄 수 있는 그런 겨울이,

    송년모임으로 붐비고,

    혈액알콜농도가 도무지 내려가지 않는 연말에 비해,

    훨씬 재미있고 즐길만한 일이다.

     

    뭔가에 집중하다가

    몸이 갑자기 피곤하다고 느끼는 것이,

    나는 병인줄 알았다.

    내 몸이 피로에 약해졌다는 사실은 도무지 인정할 수가 없었지만,

    세삼스럽게

    그런 상황이 서서히 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설을 한번 쉬면 스물여섯이다.

    나는 구정 전후 3,4개월을 햇갈린다.

    먹어서 스물여섯인지, 먹어야 되는건지..^^

    6살에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8살,9살 애들이랑 어울리면서 부터,

    아마도 나는 나이의 특징에 있어서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어쩌다가,

    서울에 와서 세번째 구정을 맞게 되었고

    어쩌다가 내 인생에 20대 중반에 꺾어들게 되고

    어쩌다가,

    겨울이라는 춥고 움추리던 꽁꽁 언 계절을 따뜻하게 풀어볼 용기를 품게 되고

    어쩌다가,

    흘러가는 한순간이 아쉬워, 손가락을 틈없이 꼭꼭 붙여 시간을 붙잡고 싶어하고..

     

    참말로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차곡차곡 만들어가는 사람도,

    어느날 갑자기,

    그때 거기서 좀만 잘했으면,,

    하고 후회하거나, 아쉬울 때가 있을까?

    매일매일을 스스로 설득하고 힘내고 즐길만큼

    어느날 갑자기 쌓여온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도

    잘 설득하고 잘 이해하고 잘 아껴줄 수 있는 그런 마음도,

    같이 차곡차곡 쌓아왔을까?

     

    나는,

    가진 것 없는 내가

    나의 모든 용기와 힘과 무모한 도전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어느날 갑자기

    내가 뭔가 가진 것이 있게 된다면,

    작아지고 약해지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또한

    뭔가를 갖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소심한 반항인가,

    내일, 앞뒤, 주변 모든것을 우려하면서 숨막히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아무 생각이 없다.

     

    늦게 찾아온 아침에 화들짝 놀랐다.

    어쩌다,

    내가 나 외의 많은 것에 이렇게 무심해졌는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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