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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라는 인생의 비타민일상다반사 2024. 1. 11. 13:16반응형
만명 이상의 도시가 생겨나면서, 상하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도시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깨끗한 물을 먹고, 깨끗한 물로 씻는 일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리하여 외과 수술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절개 수술이, 결석 제거술이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깨끗한 물을 보관하고 마시기 위하여 발명된 것이 맥주와 와인이라고 한다(“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발효”라는 것은, 정말 신의 선물과 같은 오묘한 과정이다.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여 먹기 어렵던 시절, 우리는 김치나 된장과 같은 엄청난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 술은 그런 맥락에서 그에 못지 않은 위대한 발명품이고, 그 영향력 또한 지역적으로 제한된 “김치”, “된장”을 훌쩍 뛰어넘어 세계 만인 공통의 “문화”를 다양하게 만들어 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나는 술을 좋아한다. 주량과 관계없이, 그 오묘한 맛과, 그 맛 이후의 즐거움을 모두 즐긴다. 가끔은 혼술도 하지만, 대부분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술”을 마신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얼마 전에 모 대학 학부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학부1학년 학생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에게 했던 질문 중에 하나가, “직장생활에 있어서 술은 중요한가요? “였다. 짧은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했다.
우리 첫째 아이가, 여자아이인데 동년배에 비해 말도 빠르고 어휘력도 좋은 편이였다. 5살이 되면서, “언어”로 많은 것이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막 인지하게 되었고, 남자친구들의 신체 위주의 감정표현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고, 대화가 안되어서, 도무지 그들과 놀 수가 없다. “라는 표현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놀이터에서 뛰어 놀면, 남자친구가 잘 뛰니 아님 니가 더 잘 뛰니? “
“당연히 남자친구들이 더 잘 뛰지. “
“그럼 남자친구들이 너 잘 못 뛴다고 너랑 안 놀아? “
“아니. “
“그래, 누구나 먼저 잘하는 일이 있고 늦게 잘하는 일이 있고, 좀 더 잘하는 일이 있고 좀 덜 잘하는 일이 있어. 먼저 잘하는 애가 양보하고 놀아주는 거지, 덜 잘하는 애가 놀아줄 수는 없는 거잖아. “
“아~”
나는 그 학생들에게, 직장생활에 있어 술은 정말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술만큼 사람과 친해지기 쉬운 좋은 방법은 흔치 않다. 다만, 술 또한 조금 잘 마시는 사람이 조금 덜 마시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좋은 방법인 것이다.
사람이 밀을 정복하여 정착생활을 이루어 냈는냐, 아니면 밀이 사람을 정복하여, 수많은 면역력 저하 및 전염병을 감수하면서도 밀 농사를 위한 정착생활을 하게 만들었느냐 라는 유발하라리(“사피엔스”)의 질문이 참 신선하게 느껴졌다. 마침 이에 대한 또 다른 견해가 있었는데, “술에 취한 세계사”(마크 포사이스, 서정아 역, 미래의창 출판)에서는 알콜 섭취를 위하여 인간이 정착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과감한 가능성을 던진다. 어떠한 물질이 발효가 되어 알코올이 형성되기 까지의 시간을 지키고 기다리기 위하여 정착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이다. 정착의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밀이 익어 음식이 되어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것만큼이나 알코올이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알코올을 섭취하면서 사람은 행복하고 즐겁고 용감해지고 뭔가 “좋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술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흔히 “이성”적인 것과 비교를 많이 한다. 엥겔지수를 가난 여부에 대한 지표로 본다면, 알콜중독자 비중을 빈곤지역 여부에 대한 비 공식적인 지표로 활용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자살이라는 전염성이 있는 사회적 현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콜중독과 자살의 연관성을 찾아보려고 하였으나, 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자살론”, 에밀 뒤르켐). 음주에 의한 “심신미약상태”라는 것이 형사사건에서의 판결의 근거로 남용된다는 비판과 더불어, 술취한 사람들의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다양한 “만행” 때문에 술에 대한 비판 또한 항상 있다. 네이버 검색창에 “술”을 입력하면 “술”에 의하여 가정이 파탄 나는 수많은 사례들이 튀어나온다.
술의 첫번째 순기능, “마취”가 아닐까 싶다. 의학적 용도에서의 알코올의 효용은 논하지 않기로 하고, 사람이 섭취하는 수많은 음식물 중에 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음식물은 극히 적은 데 그 중에 하나가 술이다.
주량을 물어보면 흔히, 이렇게들 표현한다.
일때문에 긴장해야 할 자리에서 정신 차리고 마시면 얼마 정도 마실 수 있고, 편한 사람들과 마음 편하게 마시면 얼마 정도 마실 수 있다.
주량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개인 기준이겠지만, “블랙아웃이 오지 않고 큰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라고만 하여도 상당히 Rough한 기준이다. 어쨌든, 많게든 적게든 “술”은 어떤 부분의 뇌를 활성화시키고 어떤 부분의 뇌를 마취시키면서 우리들의 정서와 행위에 영향을 준다.
한국에서 연간 가장 많이 쓰인 외래어가 “스트레스”라고 한다. 전민 건강검진 시대에 이어 전민 스트레스 컨트롤 시대가 시작되면서, “술”은 폭행을 유발시키는 “독”의 역할 뿐만 아니라, 수면제나 신경안정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고 싶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야간 늦은 시간의 수업 중에 단톡방에서, “끝나고 한잔 하자”라는 이야기가 뜨면 한번 더 기운 차리고 수업에 집중하게 한다. 전형적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아닐까.
친구랑, 금융회사에서 살아남은(아직?) 여자사람으로서, 혼술을 안 해봤으면 힘들었다고 말도 하지 말라고 농담을 한 적 있다. 심란했던 어느날, 혼자서 머리를 푹 박고 쉬지 않고 한라산을 완주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좋아하는 식당에 찾아가 갈치조림을 시켜놓고 한라산 한병을 시원하게 마시고 나온 적이 있다. 산에서부터 혼술까지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혼자이기에 두병까지 도전하지 않고 곱게 호텔로 돌아갔다. 집에서 집안일로 분주하다가, 아이들이 잠든 저녁시간, 라면 한 그릇 끓여놓고 소주 한병 조용히 마시는 것이 나에게는 위로의 시간이 된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디자인관련 전시회를 보다가 어떤 그림이 주는 나른함이 너무 좋아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해볕이 너무 따뜻하다 못해, 하늘도 땅도 옅은 나른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어떤 작은 집의 마당 같은 곳에 침대시트 같은 빨래가 한장 널려 있고 그 아래에 의자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너무 따뜻하고 나른하여, 지금은 게을러도 괜찮아, 다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목표지향적으로 교육받고 자라나 “해야 하는”일들에 집중하며 숨차게 달린다. 쉬어 가고 싶을 때가 있을 태지만 우리는 스스로 그런 것을 잘 찾아내지 못한다. 그런 것을 교육받지 못했으니까.
하루 일과를 정신없이 보내고 나서 티비를 켜고 시원한 맥주 한캔을 들고 쿠션에 몸을 기대여 앉은 그런 기분이다. 분주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기분 좋은 나른함을 가끔은 좋아해도 되는 것이었다.
주류회사의 상술로 주종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하나, 풍성해진 “술”의 시장만큼 풍성해진 “술”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술의 또 다른 기능, “파티”의 기능이 생겨난다. 뭐든지 잘 먹는 나지만, 가끔 남편이랑 한번 다시 와야지 싶을 “맛집”을 메모한다. “술”을 찾아서 안주를 찾기도 하지만, 좋은 안주에 또 그에 맞는 “술”을 찾기도 한다. 술이 다양해서인지, 안주가 다양해서인지, 좀처럼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한잔”이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온다고 한다. 김치 전을 붙여 먹을까 생각하면서, 막걸리를 사다 놓기로 한다. 교감이 필요한 동물인 우리는 술을 한잔 곁들였을 때 평소에 안 하던 이야기, 더 많은 이야기, 그리고 그에 대한 더 많은 공감의 감정들을 공유한다. 회사 근처 와인샵 하나를 발견했는데, 안주가 한식이라고 해서 친구들과 찾아갔었는데 정말 안주도 맛있었고 잘 어울렸다. 늘 함께 하는 술친구들이고 와인샵 오픈기념으로 와인 무제한 행사를 하고 있어서 쫓겨날 뻔한 해프닝이 있었지만 우리들에게 또 한 번의 두고두고 웃고 떠들 안줏거리가 생겨난 샘이다. 회식문화에 대하여 호불호가 나뉘고 다양한 문제점들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눈을 뜨고 생활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는 동료들과 일로 맺어진 관계를 조금 넘어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회식이 그 순기능을 분명 한다. 요즘은 알코올 없는 회식문화도 다양하게 있지만 알코올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우리 가족에게 “아사모”라는 아주 중요한 모임이 있다. 스토리가 좀 길지만 우리는 함께 모여서 맛있는 안주에 술자리를 가지며 정기적인 파티를 한다. 어느 10월의 연휴, 우리 가족은 보라카이로 여행을 가게 되었고 가이드의 주선 하에 우리는 화이트비치에서 파티를 가지게 되었다. 가이드는 현실파악이 덜 되어있던 관계로 경솔하게 우리에게 소맥 무한리필을 약속했고, 끝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체 사라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렇게 우리 일행은 처음 만난 서먹함을 이겨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의 해장술을 나누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벌써 수많은 해가 바뀌면서 아가들이 어엿한 학생들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아직도 정기적인 파티로 마음을 나누며 이 헛헛한 세상의 한줄기 빛이 되어 주고 있다.
나는 참 운이 좋다. 적당한 주량과 흥을 갖고 태어나 노는 즐거움도 충분히 알고 관계를 가지기에 서슴없는 아이로 살아왔다. 나이가 한살씩 차오르면서 더더욱 최선을 다 하여 즐겁지 않은 순간이 없을 만큼 놀아야 겠노라고 이것저것 찾아 나서고 있다. 술도 성취감이나 여행이나 책마냥 나에게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상하수 시스템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 수분섭취를 위하여 알코올을 섭취할 일이 없어 보이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즐기는 유일한 탄산음료는 맥주다. 없어서 못살진 않지만 있어서 더 잘 살수 있는 그런 것, 술은 나에게 비타민과도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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