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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전부리 2008. 12. 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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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의 전체 회식이였다.

    나는 술을 아주 정직하게 먹는 습관을 해왔으나, 정은에게 한수 배운 이후로

    회식자리에서 술을 많이 버렸다.

    그럼에도 다양한 주종을 넘나들다 보니, 

    머리가 많이 아프다.

     

    술을 첨 마신게 아마도 12살때였던가,

    그때는 중1이었다.

    중2부터, 기숙사생활을 시작하였고, 주말에도 갈 수 있는데가 달리 없어

    종종 친구들끼리 모여서 술도 마셨다. 

    고등학교때부터는 술맛을 알기 시작하고,

    시끌벅적한 모임과 술자리보다는, 좋아하는 친구랑 조용히 포장마차에서 맥주한잔 하는 것이 좋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마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 먼 짓이였나 싶기도 하지만

    대학입시 끝나고,

    교장선생님이랑 소주 한잔씩 기울이면서 술의 따뜻한 맛도 알게 됬다.

    내가 아들이였다면 아빠랑 소주 한잔 하면서

    늘어나는 아빠의 수다를 들어드리고, 어깨에 힘을 실어드렸을탠데.

     

    9월에,

    사법고시를 계기로 진짜 오랜만에 아빠랑 길고 오붓한 시간을 가졌었다.

    생각해보니, 시험본다고 누군가 곁에서 챙겨주고 했던게, 이번이 첨이다.

    아빠도 단단히 고시생 딸 챙기는 재미를 즐기시는 것 같았고,

    거기에 맞춰,

    아빠, 차가 식었잖아,,,리필도 안해주고, 너무 무관심한거 아니야,

    하면서 애교도 부려봤다.

     

    매일 저녁식사 후에 한시간쯤,

    아빠랑 맥주한병씩 마셨었다.

    그러고 나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고

    나는 야밤이 되도록 공부했다.

     

    시원한 맥주에 힘입어 첨으로 아빠랑 진지한 대화를 가졌었던 것 같다.

    내가 아들이었다면,

    아빠의 상처받은 자존심이나 늙어가는 남자의 힘든 마음을 잘 만져드릴 수 있었을 탠데,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다.

     

    여느 부모님들처럼,

    우리 엄마 아빠도,

    내가 모범생인만큼 공부만 하고 지내는 줄 알았을 탠데,

    엄마가 내 자취방에서,

    친구들이 술먹으로 나오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부모님이랑 떨어져 사니까, 최대한 조신하게 지내려고 애썼다. 

    "자취하는 여자애들은 다..." 이런식의 얘기를 부모님이 들으실가봐,

    여느 부모님들처럼, 걱정이 많으실까봐.

     

    술과 여자는 독이라고 한다.

    술이 나쁜 것이 아니라,

    과음이 나쁜 것이고

    여자가 나쁜 것이 아니라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나쁜 것이겠지.

     

    와인의 숙성된 예쁜 맛,

    맥주의 시원하면서, 은근히 감칠맛나는 알곡의 맛,

    빼갈의 향이 지긋하면서 목넘김부터 위까지 화끈하게 해주는 뜨거운 맛,

     

    좋은 술의 맛을,

    좋은 사람과 나누면서

    동양인들의 칭찬한마디도 낯간지러워하는 그런 모습을 조금씩 지워가면서

    속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나는 술이 좋다.

     

    정직하게 술을 즐기고 싶지만, 술자리란 워낙 이런저런 이유에서 다양하니까, 

    가끔 해장약도 챙겨먹고 하지만,

    그리고, 어제 그렇게 많은 술을 버렸음에도 오늘 머리가 너무 아프지만,

    그렇다고 술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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