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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심히 사는 척 하고 있었다.일상다반사 2017. 1. 27. 11:54반응형
출장 마지막 날, 잠깐 서점에 들렸는데, 문뜩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 있었다. "나는 열심히 사는 척 하고 있었다".
책을 읽어볼 생각은 없었으나, 내 얘기구나.. 싶은 마음에 생각의 문이 순간 열렸다.
대학때, 한창 사회적 책임감과 열정에 들떠있을 때, 대학이란 어떤 곳이여야 하고 대학생들은 어떤 마음가짐이여야 하는 지에 대하여 혼자 신나서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지금 읽어봐도 그럴듯한 바가 없잖아 있지만, 요즘처럼 교육의 주기가 상당히 많이 길어진 상황에서, 대학이랑 그냥 기초교육의 하나의 단계로 보여지기도 한다.
대학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인지,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공부에 유난히 목말라 했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뭔가를 계속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꾸역꾸역, 그렇지만 띠엄띠엄 했던 것이 2008년 부터 시작했던 사법고시 공부라고 할 것이다. 사실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1년 내내 열심히 공부한 건 진짜 아니다. 다행인건 워낙 야근이 많아 술자리가 별로 없었기에, 맑은 정신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좀 있었다. 운이 좋게도, 2013년 시험에 붙었고 아무 의미 없이 명함에 자격증 한개가 들어갔다. 다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꾸준히 하던 일이 없어지니, 정신적인 허무함이 찾아왔다. 사실 양심적으로, 고시공부 기간에도 열심히 공부 했다고 하지는 못한다. 그동안 1년에 소설 10권 이상은 읽었으니. 그 당시 멘토였던 팀장님 말씀대로라면, 취미생활하는 놈이 고시생인척 하지 말라고…
그 2013년에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동양사태가 터졌고, 나는 그 동양사태의 핵인 동양증권, 또 동양증권의 동양사태 사후관리 TF 소속이었다.
요즘은 이런 저런 자리에서 나 스스로를 이야기하면서 지난간 11년의 시간을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나란 사람의 성향은 머리숙여 한가지 일에 몰입하여 미친듯히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시간도 잘 가고 문뜩 내가 지금 어디에 서 뭘 하고 있지.. 하면서 머리를 들어보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열심히 사는 척 하고 있다.
늘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의 일과를 이야기 하면 많은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거나 너는 언제 자냐는 이야기를 한다.
하루에 하는 일이 참 많긴 하다.
사법고시가 끝나고, 동양사태도 끝났고, 유안타가 되면서 더 많은 동료들을 알게 되고, 이 반짝거리는 사람들과 조금 더 좋은 회사에서 조금 더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유안타"라는 회사라면 회사이고, 사회라면 사회인 곳에 또 머리를 박고 2년을 지냈다.
물론 그 와중에 남편이 지대한 지지를 받으며 두 아이를 낳고, 돌봐주고 그 아이들에 의하여 엉망진창이 된 집을 케어하고 우리 가족에게 계절에 맞는 옷과 물품을 장만하고 시댁과 가족이 되고 엄마아빠의 딸로, 그렇게 살았다.
듣는 사람이 현기증이 난다고 한다.
이런 스케쥴을 소화하기 위하여 부족한 영어공부를 출근 전에 하고, 점심시간에 수영을 하며, 퇴근 후 술이 취하지 않은 경우 줄넘기도 한다.
근데 사실은 나는 아직 너무 부족하게 지낸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영어 출석율이 100%도 아니고,
수영도 주3회에서 1회정도는 빠지고,
줄넘기도 추워지면서 멈췄다.
모든 일에 항상 그렇다. 진짜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스스로에게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무식하게 사나 싶은 순간이 아주 많다.
언제부턴가, 나는 면담해주는 선배가 되버렸다.
후배들이 차한잔 사주세요... 라고 많이 찾아온다.
그만큼 내가 좋은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면서 잘 살았다는 자부를 하지만, 이런 내용들도 내가 "꾸역꾸역" 애착을 가지고 회사생활을 하는 "인질"같은 것으로 잡혀버렸다. "인질"은 우리 인사팀장님의 표현이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선배 후배들에게 과연 내가 도움이 되고는 있을까. 그런 점에는 심히 의문이다.
어디까지나, 나는 열심히 사는 척을 하고 있는거니까.
나는 프레임을 참 좋아한다.
1~10이라는 길을 그려놓고, 내가 지금쯤 1을 깨고 있고, 중간중간 5쯤 와있구나 하면서 만족스러워 하고. 몰입한다.
회사 리더십교육에서 MBTI에 대한 리마인드 교육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이런 모습이 사람의 수많은 성향 중에 하나이고 나와 다른 수많은 성향들의 사람과 살고 있다는 점에 공감을 했다는 것이, 나의 11년 직장생활에서의 성장인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아이를 낳고 참 많이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아, 관심이 없을 수도 있구나. 아, 잘 모르고 잘 못해도 나중에는 다 하는구나...
원천적으로 이런것에 공감이 되면서 회사생활도 사회생활도 한층 윤기나게 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하나 하는 생각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성희롱 예방 지킴이로 팀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면서, 동료간의 배려를 강요하다싶이 교육을 한 적이 있다. 직장생활 30년을 생각하면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평가를 한 번 잘 받는 것? 승진을 한번 빨리 하는 것? 직장인들의 행복도는 직장 내에서 친구를 만들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와 비례된다고 한다.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나”는 내가 뭔가 궁금하고 협력이 필요할 때 도와줄만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시작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또 남편한데 미안한 얘기이고 나의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참 많다. 나이불문 직급불문, 나의 “형”으로 통하는 사람이 참 많을 만큼, 나는 좋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좋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어하고 적극적으로 좋은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더 내가 바쁘게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열심히 사는 척 한 많은 것중에 꾸준히 정성과 시간을 들여오면서 “꾸역꾸역” 한번도 정신줄을 놓지 않은 것이 좋은 사람과 친해지는 일이였던 것 같다.
나는, 지금 보다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이 꿈이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 스스로 부끄럼 없는 인격 좋은 사람.
요즘 우연찮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과 “메시”라는 책을 섞어서 같이 읽게 되었다. 나의 많은 강박적인 관념을 깨고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한 종합교육같은 느낌이다. 참 재미있다.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 수 있어지고 잘못됬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럴수도 있어보인다는 것이.
좋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향한 나의 꿈이 식지 않는 한, 어설프게 이것저것 계속 쑤셔가며 나의 시간을 계속 쓸 것 같다. 물론 하다 지쳐 퍼져 앉아 어설픈 게임을 하면서 왜 이렇고 살고 있나 하면서 어설픈 시간도 중간중간 보내겠지만, 나의 1~10의 프레임을 놓치지 않고 조만간은 더 “피곤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종착지가 어디인지 나도 알수 없는 길이고 가는 길에 어떤 가시밭길이 나올지 모르는 현실이고 체력이 운동을 해도해도 하루하루 피곤해지는 현실이지만, 나는 아마도 조만간 계속 열심히 사는 척 하고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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