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응형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졸업하던 해에 돌아가셨다.
4년 전의 비슷한 시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할머니는 그러셨다.
니네 할배가, 5년 뒤에 나 데려간댔어.
할머니는 키가 140미만인 작달막하고, 몸매가 반듯하며,
고운 얼굴에 파마머리를 곱게 빗어넘긴 여인이였다.
나는 그 작은 등에 업혀서 컸고
언젠가 할머니보다 키가 더 커버려,
나를 업고 동내를 누비던 몸을 가볍게 업을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는 무지 깔끔하신 분이다.
시골에 살 때,
우리 집 앞마당이 네 변두리 따라 사과나무를 열그루씩 채워 심을 수 있을 만큼 넓었는데,
잡초 하나 없었다.
우리 집에서 나랑 언니가 다니던 초등학교 문앞까지,
항상 모래들이 곱게 쓸어져있었고
길 양옆의 잡초를 다 정리하고,
얘쁜 꽃들을 심어놓기도 하셨다.
그 길이,
거의 동내의 반은 누비는 거리였는데도 말이다.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랑 같이 자는 것을 좋아했다.
어른들이 놀릴 만큼,
나에게 진지하고 단순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애기때부터 꼭 누군가의 목을 만져야 잘 수 있었고,
한참 애기 때는, 손톱으로 꼬집기까지 했다고 한다.
스킨십을 짱 좋아하는 나에 비해
우리 옥순씨는 스킨십을 피하는 편이였고,
내가 손을 옥순씨 목으로 슥~ 가져가면,
톡, 내손을 쳐내는 것 외에는, 다른 기대를 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껴안는 것도, 손톱으로 목을 꼬집어 자국이 생겨도 마냥 좋아하셨고
항상 껴안으셨다.
그리고 또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면,
애기때부터 나는 야식 매니아였고,
일찍 잠들었을 경우에는
야밤에 일어나서 한번 더 먹어야 아침까지 잘 수 있었는데,
옥순씨는 절대, 야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머니랑 자면,
한창 자다가,
할매, 나 배고파,
하면, 언제든지 일어나셔서 야식을 챙겨주셨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면,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셔서,
야밤에
할매 나 배고파,
하면,
배아프다고? 멀리 나가지 말고 저기 요강에다가 똥눠...하신다. ^^
할머니는 우리를 끔찍하게 아끼셨고,
엄마가 한번 혼내려고 하면 언제든지 우리 앞에 막아섰다.
내가 애기때, 업고 동내에 나가셨다가
누군가,
뉘집 애기가 이렇게 못생겼나,
해서, 다시는 그 아주머니들이랑 안노셨다고 한다.
나는 서너살때부터, 할머니랑 민화토를 쳤다.
제법 돈계산도 잘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보물단지를 갖고 계셨는데,
항상 돈이랑 사탕이랑 과자가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숨겨놓았다가
나랑 언니한데 챙겨주고,
화토쳐서, 나한데 용돈 넣어주고 하셨다.
우리 동내에 한번씩 아이스크림 장수가 오면,
꼭 우리집에 들렸다.
할머니는 기적처럼 아이스크림 장수의 소리를 잘 들으셨고,
우리가 추워서 떨더라도,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먹이셨다.
할머니는 아주 오래 전에,
기찻길에서 넘어져서, 거기 깔려있는 자갈에 이마를 다쳐, 큰 검정 흉터를 갖고 계셨다.
나는 태여나서부터 그 흉터를 보았고
그 흉터는 의례히 있어야만 하는 우리 할머니의 모습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마도 돌아가시기 2,3년 전인, 이른이 넘은 그때,
아빠가 성형수술을 해드렸다.
할머니도 여자였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것 같다.
우리 할머니는 얼굴도 참 고우시고,
타령도 구수하게 잘 부르시고,
옷 매무시도 참 좋으시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하얀 주름치마를 좋아하셨고,
하얀 가디건같은 깔끔한 차림을 좋아하셨다.
머리는 항상 감으신 후에 머리기름으로 곱게 뒤로 빗어넘기셨다.
집에서 잠깐 나가시더라도 절대 대충 나가는 법이 없다.
할머니는 중국어가 서투르셨다.
내가 8살 때까지 조선족만 모여사는 동내에 살아서 전혀 몰랐었다.
도시로 이사나오고 나니 주변에는 온통 한족들 뿐이였다.
할머니는 이웃들과 손발을 함께 하는 서툰 중국어를 구사하셨지만,
심통하게 친구를 잘 만드셨고 의사소통도 곧잘 하셨다.
새로 이사간 동내 친구들한데,
오랜만에 기숙사생활 하다가 집에 간 나를 소개시켜야 하는데,
손주라는 중국어를 몰라서,
내 아들에 아들, 이라는 표현을 기발하게 쓰셔서
나를 놀라게 하신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해의 여름방학에 돌아가셨다.
덕분에,
할머니가 힘이 빠져가는 긴 시간을 같이 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임파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다들 고생을 안하고 돌아가신 편이라고 한다.
정정하시다가 어느날 드러누우셨고, 일주일만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을 참 좋아하셨다.
드러누우신지 3일 째 되던 날,
할머니 드리려고 수박이랑 아이시크림을 잔뜩 사와서,
수박씨를 빼서 입에 넣어드렸는데,
그러시고 나서,
아이스크림을 밥그릇에 한그릇 가득 드셨다.
속이 차가울까봐 무지 걱정했는데,
계속 달라고만 하신다.
그렇게 그걸 다 드시고 다시 누우셨는데,
그 후로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셨고,
3일만에 돌아가셨다.
내 손으로 몸을 닦아드리고,
할머니께서 손수 준비해두신 하얀 소복을 곱게 입혀드렸다.
그렇게 장례식을 다 마쳤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거,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고,
내가 방학해서 집에 오면
또 저 멀리까지 마중나와
내 짐을 빼앗아 들은 할머니의 나보다 한참 작은 몸을 내 어깨속으로 꼭 껴안고 집으로 갈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대학생이 되고,
버스로 학교앞 전자상가를 지날 때,
어떤 작달막한 할머님이 허리위로 바짝 백팩을 매고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을 봤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손녀가 대학생이 된 것을 무지 좋아하셨을탠데.
동내 아주머니들한데 한참 자랑 하실꺼고,
내가 다니는 얘쁜 캠퍼스를
다시 내 어깨속에 할머니 어깨를 꼭 껴넣고,
구경시켜드리고, 내가 사랑받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릴탠데.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 뒤에야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실감하고
장례식때도 없었던 슬픔이 아닌 그리움에 북받쳐,
버스에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할머니는,
나름 슬프고, 어려운 사랑이야기를 갖고 있는 여인이고,
긴 역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여인이고,
분명, 행복한 그리고 행복하게 생을 마감한 여인이기도 했다.
애들을 혼내는 무서운 동내할머니에 비해,
우리 할머니는 항상 애들에게 간식 챙겨주시고, 안아주시고 웃어주시는 고운 할머니였으니까.
오늘이 아빠 생신이여서인가,
아무 생각없이 살던 요즘같은 시간에,
잠만 자던 버스안에서 할머니 생각을 쭉 하게 됬다.
아빠는 할머니가 보고싶을까,
나처럼 엄마가 보고싶어서 울고 싶기도 할까,
나이 들었다고 해서,
그리고 누구의 아빠가 됬다고 해서,
엄마가 보고싶지 말아야 하고,
외로워도 괜찮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반응형'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아일기(2) (0) 2009.09.30 낳아준 사람에게 한번이라도 고맙다고 꼭 말해주세요 (0) 2009.06.08 one of a kind (0) 2009.04.22 영어공부는 이렇게~ ^^ (0) 2009.04.06 옥순씨 보고싶은 날(2) (0) 200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