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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중국(2)취미생활 2009. 1. 14. 12:59반응형
크루서블(The Crucible)를 보면서,
아마도, 이것이 문화대혁명이였을꺼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마녀라고 적발하지 않으면, 내가 마녀라고 잡혀버리는,
기립박수를 받은 명대사가 있었는데,
上帝啊,你死了吗?
하느님이여, 당신은 죽었는가?
문화대혁명에 대하여 여러가지 설이 있다.
분서갱유식의 새 정권의 청소운동이라는 설에 공감이 많이 가는 편이다.
그때의 상황이라면,
드라마나 소설을 통하여 크게 부각되었던 것이 세가지 내용이 있다.
1. 도시청년들의 농촌생산 체험을 위한 무작정 농촌 투입
2. 학교의 대 반란. 학생이 선생님 목에 비판 패말을 걸고, 후진 유교사상을 숙청하기 위한 사상해방운동을 표방한 성생님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횡포
3. 마녀사냥. 봉건지주와 자본주의를 숙청한다는 구호를 만들어 족보를 씨의 끝까지 들춰내는 철저한 고발과 투쟁.
물론, 공식적인 입장발표를 위한, 개인숭배의 표방은 모든 부분에 동반하는 내용이였고.
현재의 호적제도와 더불어,
도시청년들의 농촌생산체험에서 자초한
그리고 과거의 인맥을 밟고만 가능한 철저한 인사제도가 하나가 된,
이혼, 재혼, 이산가족 등이 한동안은 사회적 Issue로 드라마나 책 등을 통한 표현이 휩쓸기도 했었다.
지금의 중국 역사책에서는 10년 동란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10년동란이라는 표현으로 모든 것을 묻어버렸다.
<<인생>>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 평범한 중국 도시 주민의 수십년의 생활상을 그린 책이다.
장예모가 이를 영화로 만들어 칸에서 상까지 받았던 작품이고,
중국 내에서 금지됬던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 위화의 소설을 읽으면서
예리한 필법과 사회에 대한 초심탄탄한 해독법에 감탄하면서도,
너무 신랄하고, 너무 특정 사회의 모습에 집착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작품들을 읽으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고, 사람의 초심탄탄하게 자신에게 충실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한다.
<<인생>>에서 비춰진 문화대혁명의 짧은 모습이다.
학교들에서는 선생님들을 투옥시키고 구타하고 괴롭혔고,
병원에서도 교수님들을 감금시키고, 굶겼다.
마침 이때
주인공의 딸이 애를 낳게 되었고,
병원에는, 대학 재학중인 실습생들만 득실거렸다.
우왕좌왕 끝에,
딸이 애를 낳긴 했지만,
대출혈로 위험하게 되었고,
급한 사람들은 감옥에 찾아가 산부인과 교수님을 모셔오는데,
교수님은 너무 허기가 져, 정신을 못차리고,
급한 김에 주인공은 빵을 잔뜩 사다가 교수님께 드리는데,
교수님은 너무 배가 고파 빵을 마구 먹다가 걸려버리고,
아무 생각없이 물을 먹었다가
먹은 빵이 불어나, 교수님마저 위태하게 되버리고,
그러는 와중에 딸은 죽는다.
위화의 다른 소설, <<형제>>에서는
문화대혁명에 대하여 편폭이 조금 더 길다.
각자 아들 한명씩 있는 남녀가 재혼을 하여 같이 살게 되는데,
아내가 먼 상해 병원에서 입원하고 있는 동안,
남편이 모함으로 투옥하게 되고 갖은 모욕과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럼에도, 퇴원하는 아내를 마중하겠다는 약속 하나로, 감옥에서 도망나와 상해로 가고자 하는데,
쫓아온 학생들의 발길질에 쓰러지고,
겨우 기차역까지 다 가서는,
모래바닥에서 쓰러져,
구타를 견뎌내지 못하고
피와 모래 범버기 속에서 죽게 된다.
어린 두 아들은 엄마가 퇴원한다고, 곧 올꺼라고 기차역에 룰루랄라 마중나왔다가
그 남자의 시체를 보고 못알아본다.
그러다가, 이름을 듣고, 알아보게 되고, 그냥 무너져 운다.
청도출장중의 어느 한 주말,
내가 묵던 호텔 아래층에 있는 스타박스에서 이 책을 읽다가 울어버려서, 민망했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을
나는 겪어보지 못했기에 책, 영화, 윗분들의 얘기를 통해서 아는 것이 다다.
아마도 크루서블에서의 마녀사냥처럼,
언젠가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과,
버릴수밖에 없는 학업, 도시생활, 가족, 사랑과
살아남기 위한 다른 사람에 대한 모함, 구타, 마비된 마음속에 한번씩 찾아오는 죄책감,
이런 모습들이 아닐까 싶다.
중요한 것은,
중국사람들은 그런 시간을 겪었고 그런 아픔을 겪었다.
그것도, 너무 길었던 전쟁과 굶주림과 모욕과 비굴함을 겨우 뒤로 할까 했던 시간에
이런 것을 겪었다.
개혁개방이라는 것이 찾아오면서
재산이라는 것에 대하여 눈을 뜨기 시작하고
똑같이 나눠먹는 것이 아니라,
좀만 노력하면, 다른사람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역시 그런것은 가르칠 필요없이
잠자던 쌓였던 욕구와 자존심과 모든 것을 불러일으켰다.
배금주의, 돈으로 세상을 사는 시대, 라고 사회언론을 도배할만큼의 폭발적인 시대가 오게 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중국사람들은 반성을 하고, 안정을 찾고, 배부른자의 인격과 품위에 대한 추구를 시작하게 된다.
...
10년 동란,
마냥 어둡고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 세상처럼 그려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지 않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그 10년동안도 많은 행복이 있었다.
사회라는 것이, 그리고 내 주변이라는 것이,
내 마음에 안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게 되고, 나를 힘들게만 하고,
하더라도
행복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화의 다른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서 느낀 것이다.
아마도, 위화라는 작가분이 여러 소설을 쓰면서의 마음가짐과 소설속의 인물들의 생활상이나, 이런 부분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소설들을 읽은 시간이 다르고, 내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에
단계별로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허삼관이라는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되고
자기자식이 아닌 애랑 자기자식인 애랑 키우게 되고
똑같이,
사회의 격변속에서
애들의 성장과 생활고를 겪게 되는데,
세상아 짖어라~하는 자세로
변함없이 무식할만큼 진지하고 무식할만큼 순수하고
세상이 무색할만큼의 부성애를 가지고
마지막한방울의 피까지 팔고자 하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마냥 높은데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역사를 평론하고
역사속에 있었던 사람을 평론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론자의 마음가짐에서의 그 사람의 느낌에 대한 예측일뿐,
그 사람의 처지나 느낌은 아니다.
지주의 착취를 받던 농민도
문화대혁명의 혁명을 당하던, 목에 패말을 걸고 날아오는 계란을 머리로 받던 그때의 중국인도,
그 시간의 그의 인생의 전부인만큼,
그 시간의 모욕과 아픔만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목에 패말을 걸고 길에서 투쟁받고 있는 아내에서 도시락을 싸다주는 허삼관이,
흰 밥만 있는 도시락을 보고 실망하는 아내에서 곱게 웃어보이면서,
사실은 다른사람들이 손가락질할가봐, 반찬을 밑에다가 숨겼어~ 한다.
그러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얘는 죄가 많으니까, 반찬따위는 먹이면 안되지, 암, 그렇구 말구, 한다.
사람에게, 그리고 시대에게,
나, 로서가 아닌 다른 눈으로 다른 진심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은 없고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는 없다.
간혹 무기력하게 느껴지더라도,
간혹 힘들고 갑갑하더라도,
당분간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당분간 조금만 더 행복해지는 방법은 어디에든지 있다.
문화대혁명을
10년 동란이라고 해도 좋고
비열한 정치싸움이였다고 해도 좋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시대라고 해도 좋고
사람들은 그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에서도 행복은 했었다.
이겨내는 것이란,
그 시대를 벗어나거나, 뒤엎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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