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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엄마는 어떻게 나를 수재로 키우셨을까(1)
    일상다반사 2014. 2. 1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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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나의 유대관계를 "교육"이라는 이름과 연관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요즘 들어 글을 쓰고 싶은 욕구, 소설 연극 뮤지컬에 대한 무한사랑을 피부로 느끼면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엄마가 나에게 "너는 작가가 참 어울릴 것 같아"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언어에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하셨다.

      아직도 나는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을 이루는 것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으로, 우리엄마는 충분히 나를 잘 키워주셨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생기고 보니, 누군가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건지 좀 더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늘 이러고 놀았다.

      "엄마,,, 엄마는 참 좋겠어,, ""?""나처럼 똑똑하고 예쁜 딸 있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그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쟨 누굴 닮아서 저러니.. ㅋㅋㅋㅋ"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늘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부끄럽고 마음에 걸리게 하는 작은 에피소드가 있다.

      어렸을 때 시골마을의 초등학교에는 난로불을 피워 난방을 했다. 땔깜도 땔깜이겠지만, 불을 붙이기 위한 마른 솔가지를 학생들마다 조금씩 가져오라고 했다.

      다른 학생들은 한번쯤 쓸 수 있도록 잘 잘라져 있는 솔가지를 한봉지씩 가져왔다. 그 솔가지는 아이보리에 살짝 살구빛이라고 해야 하나 핑크빛이라고 해야 하나, 곱게 잘 말려진 솔나무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하필 우리 엄마는 똑같은거라며 검정색 석유가공품 같은 흉한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셨고, 나도 딱히 반발할 수도 없어 그냥 갖고 나왔다. 왠지 부끄러워 학교에 가져갈 수가 없어 나는 학교가는 길에 다른 집 문 앞에 그 "물건"을 살짝 놓고 몰래 도망쳤다. 빈손으로 학교에 갔으니, 오전 내내 벌을 섰지만, 그래도 안가져오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시골초등학교 소속 유치원을 다니면서 뭘 노는지도 모르고 놀던 나는 초등학생이 너무 부러웠고, 6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시켜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했다.

      시골초등학교라, 교장선생님도 엄마의 친구셨고 두분이 상의하신 결과, 나에게 시험을 보게 하고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냥 단념하지 않겠냐고, 합의하셨다. 초등학교 언니를 곁눈질해온 나는 손쉽게 더하기빼기위주의 수학과 가나다라 수준의 국어를 올백으로 통과해버렸다. 난감하셨겠지만 약속은 약속인지라 교장선생님은 6살인 나를 1학년에 받아주셨다.

      1학년에 입학한 나는 숙제가 뭔지도 몰랐다. 하루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이 칠판에 뭘 적으시는데 도저히 어쩌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매일 등교와 동시에 교실 뒷쪽에서 한시간 이상씩 벌을 섰다. 두 팔을 나란히 펴고 교편을 올려서 서보기도 했다. 다행이, 중국의 학교에서 가장 심한 체벌이 벌서는 정도였고, 나는 영문은 모르지만 곧잘 서있었다. 너무 어려서인지 딱히 부끄러운 줄도 몰랐었던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선생님이 우리 집에 여러번 찾아가셨다고 한다. 엄마는 깍뜻이 선생님께 사과하셨고, 나에게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학교는 온전히 나의 사회생활이니, 알아서 하는거라고 생각했다고 하신다.

      그렇게 등교하고 벌서고, 자리에 앉으면 짝꿍과 장난치고 싸우고, 엄마가 출장 가셨다가 저 멀리 집에 오시는 거 보이면, 쪼르르 담임선생님께 달려가서 "선생님, 오늘은 그만 집에 가시죠"라고 당당하게 말씀 드렸다가, 기가 막힌 선생님에게 손목 잡혀 교실로 돌아가기도 했다.

      언니의 유일한 교과서 외의 책인 "과외독서"라는 책을 읽은 기억으로, 손수건빨래를 기가 막히게 써내서 선생님을 화들짝 놀래킨 적이 있다. 그렇게 어영부영, 아무 생각 없이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에 갔다.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조선족초등학교에서는 중국어를 2학년부터 배웠다.

      어설픈 한자를 조금 배운 내가 삼촌의 무협지를 읽는 것을 보고 엄마가 한글로 된 살수 있는 모든 어린이잡지나 책을 주문하셨다고 한다. 그래봤자 매달 2~3권정도가 고작이었지만, 나에게 너무 큰 낙이였다.

      6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언니만한 그리고 언니보다 더 큰 언니들과 같은 반에서 오롯이 나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언니들이 괴롭힌다고 우리 언니한테 이르고, 언니와 나와 그쪽 언니들과 싸운 적도 있다. 우리고 싸우고 꼬장꼬장하게 들어와도 엄마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6살까지 바지에 실수를 한 기억이 있다. -30도의 추운 겨울에 손이 꽁꽁 얼어 실외의 화장실에서 그 두껍고 겹겹이 입은 옷을 벗을 수가 없어 바지에 실수를 하고 학교고 뭐고 없이 바로 집으로 달려갔던 것 같다.

      요즘 얘기지만, 내가 애기를 낳고 엄마한테 갔을 때,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6살이란 어린 나이게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갈 때, 엄마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냈지만, 가는 내내 멀찌감치 숨어서 뒤에서 늘 보고 계셨다고. 부모가 되서 닥달하는 것 보다 "방치"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너는 아직 모를꺼라고.

      엄마의 그런 "방치"속에서, 나는 내가 지금쯤 기억할만한 첫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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